# 영생교 교주 조희성 프로필
조희성 프로필
조희성은 1931년 8월 11일에 태어났으며, 2004년 6월 19일에 사망했습니다. 영생교의 창시자이며, 신도 6명의 살해를 지시한 혐의 등(살인교사)으로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다가 2004년 6월경 2심에서 살인교사 혐의는 무죄, 범인도피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수감생활 중 향년 74세로 일생을 마감했다.
영생교란 무엇인가?
영생교는 대한민국의 종교로서 조희성에 의해 1981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승리제단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다. 영생교 또는 승리제단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2021년 2월 9일 발생한 부천시 집단감염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승리제단 초기 상황
1980년 10월 15일 공식 출범한 이후 10여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승리제단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그들은 한결같이 영생하는 창교자를 믿으며, 승리제단 중심의 지상천국실현을 고대했고, 지상천국의 실현은 인간의 몸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믿었다.
창시 후 10년이 지난 1990년 당시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승리제단 안팎의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며 전도활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세련된 교리서와 조직, 전도를 위한 전략과 전술은 부족했어도 늘 "형제를 내 몸처럼 여기라"는 창시자의 종교적 신조를 대다수 신앙자들은 실천하고 있었다.
납치 및 폭행
영생교 승리제단은 1989년 5월 9일에 한 때 1988년 10월 30일 승리신문에 기고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열성신도였던 신진규 경북대 공법학과 교수가 영생교를 그만두자 20일동안 감금, 폭행하였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보도된 신진규 교수 사건과는 다른 내막이 있었다.
신진규 교수가 이 사건을 취하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감금 및 폭행이 아내 김순자의 선의에 의한 행동으로 발생한 것이므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조희성 살인 및 유골 발굴
1994년 1월 12일에 교주 조희성이 서울지검에 사기, 횡령, 경관 감금 등의 혐의로 구속되었다. 13일에는 국제종교문제연구소와 피해자 가족들은 영생교에 의해 납치 또는 실종된 사람이 15명에 달한다며 수사를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검찰은 수사를 진행하였으며 같은 해 2월 20일에는 영생교의 행동대 3명을 구속하였다. 그리고 조희성과 이들 3명을 추궁하였다.
조희성 사형선고!
2004년 2월 수원지방법원은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던 교주 조희성과 처단조 행동대장 나경옥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다른 처단조 간부인 김진태는 무기징역 조모, 정모씨는 각각 징역 15년, 12년형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교주 조희성과 간부들은 항소하였으며, 항소심에서 교주가 직접적으로 신도 살해를 지시하였는가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으며, 나경옥의 도피를 방조한 것에 대서만 2년형을 선고받았다.
조희성의 사후
2004년 교주 조희성은 상고심 계류중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조희성이 죽고 그의 시신은 김포시 대곶면에 묻혔으며, 부인인 이영자가 총재로서 승리제단을 이끌고 있다.
분파로는 삼천년성과 군화엄마와 같은 단체가 있다. 이 중 군화엄마는 2004년과 2011년에 세계적인 괴질이 닥칠 것이라 주장했다.
# 영생교 부천 승리제단 코로나19, 53명 집단감염
https://youtu.be/KoFq9_A6_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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