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시황제의 모든것
진시황제는 누구인가?
진나라의 제32대 군주이자, 제6대 왕이자, 첫 번째 황제. 휘는 정.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였고 황제라는 직위명을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다. 스스로를 첫 번째 황제라는 뜻의 시황제로 자칭했는데, 진나라 첫 황제라는 의미로 진시황이라 하기도 한다.
고대 중국의 연, 조, 위, 제, 한, 초 6국을 멸망시켜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왕조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약 2000년에 걸쳐 이어진 황제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한 인물이며, 따라서 중국 역사에 결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진시황제 일생
# 출생과 어린시절
기원전 259년 정월(음력 1월 15일)에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영이인(훗날 장양왕)과 조희 사이에서 태어났다. 시황제의 아버지 영이인은 진나라의 태자인 된안국군 영주의 아들이었지만, 서자라서 보잘 것 없는 대접을 받고 장평대전 이전에 조나라의 인질로 끌려갔다.
그러던 중 당시 사업차 한단에 와 있던 거상 여불위의 주목을 끌어 후원을 받으며 안국군의 정부인인 희양 부인을 포섭해 안국군의 후계자가 되기로 약속을 받는다.
얼마 뒤 영이인은 여불위 집에서 조희를 만나게 되고, 여불위에게 부탁해 조희를 받는다. 그리고 영이인과 조희 사이에서 자녀를 갖게 되고 아들이 태어나는데 이 아이가 바로 시황제인 '정'이다.
# 왕위에 오르다
영자초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 당시 진나라 왕이자 시황제의 증조부였던 소양왕이 붕어하였다. 효문왕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으나 사흘만에 붕어하고 말았고, 이를 이어 영자초가 즉위했으니 그가 바로 장양왕이었다. 그러나 장양왕도 3년 만에 붕어하는 바람에 정이 13살에 진나라의 왕이 된다.
# 진시황의 업적
황제의 자리에 오른 시황제는 본격적인 제국 통치 사업에 몰두하면서 갖가지 개혁 정책을 내놓는다. 우선적으로 군현제를 실시하였는데, 군현제를 실시함으로써 중앙 집권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중앙 집권 체제 강화를 위해서 진나라의 통치 이념이 되였던 법가 사상을 중국 전역의 통치 이념으로 내세우는 등 사상개혁도 시도하였다.
또한 진시황은 온 나라가 들썩일 정도의 대규모 토목 공사를 수차례 벌이기도 하였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아방궁과 진시황릉을 건설하여 황제의 권위를 강화하는 한편, 운하를 파서 수로를 통한 교역과 물품의 운송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진시황제 수은 중독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진시황의 말년의 기행과 폭정, 암굼의 형태는 진시황이 중장년부터 꾸준히 복용했던것으로 알려진 수은 중독으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수은에 장기간 노출될 시 우울증, 의욕상실, 비정상적 졸음 등 정신적인 장애를 동반하며, 심할 경우 환각, 정신착락, 기억상실로 지능이 극도로 떨어진다. 즉 뇌가 망가진다.
진시황제의 죽음
말년에 불로초 찾기 대모험과 같은 삽질만 하던 시황제는 자신이 제패한 중국의 천하를 둘러보고 여러 차례에 걸쳐 전국 순행을 단행했으나, 다섯 번째 순행 도중에 병에 걸려 회복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기원전 210년 7월 사구에서 병사하면서 약 50년간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클릭한 글
'알쓸신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준영 변호사 학력 부인 프로필 (0) | 2021.02.20 |
---|---|
시지프스 뜻 드라마 (0) | 2021.02.16 |
설날 인사말 좋은글 문구 모음 (0) | 2021.02.08 |
유퀴즈 김치가루 맛 정보 리뷰! (0) | 2021.01.13 |
2021년 새해 인사말 모음 (0) | 2020.12.26 |
댓글